< 제 3일 - 데이크루즈와 짐바란카페 >
발리에 온지 3일째다. 오늘은 아침 6시에 잠을 깼다. 제일 바쁜 하루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침 식사를 둘 다 아메리칸식으로 했는데 수박주스와 커피, 버터와 잼을 바른 빵 한조각으로 가볍게 했다. (양이 너무 많았고 발리에 와서 하도 많이 먹어 배가 안고프기도 한 탓에...참고로 드림랜드 식당의 요리는 정말 일품이다.)
8시에 정확히 아스타와를 만나 베노아항구로 향했다.
뽀빠이와 함께 이글스의 ‘Hotel California'를 들으며 창밖을 감상한다. 가다 보니 거리에 수많은 빨간색 깃발이 나부끼고 있다. 아스타와에게 물어보니 메가와티당 깃발이란다. 인도네시아엔 40개의 정당이 존재한다고 덧붙여 설명해 준다. 와...많기도 하다.
잘 정돈된 가로수들 사이로 조경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그리고 갤러리아면세점과 ‘물의 신’ 동상과 분수를 지난다.
마침 비가 쏟아진다. 우기라 스콜이 지나가는 걸 체험할 수 있어서 좋다. 노래도 뽀빠이의 애창곡인 엘비스의 ‘My Way’로 바뀌었다.
해변도로를 지나는데 기사가 입장료를 낸다. 얼마냐고 물어보니 2000루피아(우리 돈 200원)라고 한다. 물가가 정말 싸긴 싼 나라다.
우리가 이용할 데이크루즈는 3개사가 운영하는데 우리가 탈 배는 ‘Bounty Cruse' 다. 예전엔 ‘퀵실버’를 탔었는데...
9시 45분이 되어 항구에 도착한 우리는 퀵실버보다 더 큰 배에 승선했다.
승선하는데 전통의상을 입은 발리여인 둘과 사진을 찍으란다. 예전에도 찍은 사진이 있어 거절하다가 그냥 찍었다.
배는 3층짜리 배인데 한국인도 많이 보이고 사람들이 꽤 많다.
빵과 주스, 커피 서비스가 기분 좋게 한다. 빗방울이 서린 선상 창밖으로 많은 배들이 잔뜩 폼을 잡고 한가로이 물과 놀고 있다.
아스타와가 진한 커피를 마시면 멀미가 가신다고 해서 블랙으로 한 잔 마신다.
10시 15분 배가 출항을 시작하여 40분이 걸려 작은 배로 갈아 탄 우리는 원주민섬인 ‘누사룸봉안섬’에 도착했다.
바다색이 너무나 예쁜 걸로 봐서 산호섬인 것 같다.
이 곳은 약 500명의 주민이 사는데 주로 어부들이고 우뭇가사리를 양식하여 산다.
우뭇가사리는 말리고 가공해서 청포묵이나 푸딩을 만든다고 한다. 기념품가게들도 간간이 보이는 걸로 봐서 상인들도 있다.
이 곳의 ‘벤츠’라고 부르는 트럭을 타고 우린 섬 구석구석을 돌아본다.
새들과 작은 소들, 고양이, 옥수수, 너무도 울창하고 큰 벤자민나무, 다양한 나무들,유치원 아이들, 야자나무, 가족사원, 병원 등이 계속해서 보인다.
차에서 내려 우린 수정처럼 맑고 옥빛이 눈부신 바다를 보고 경탄한다. 우뭇가사리를 널어 말리는 모습과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일본의 침략을 받았을 때 숨어 살던 동굴집(‘칼라칼라’라는 사람의 집)인 전통가옥을 돌아본다. 좁은 동굴 안에 부엌도 있고 사람이 살았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숨이 막혀 얼른 동굴을 나오니 아주 큰 벤자민나무와 발리꽃목걸이를 만드는 재료인 발리의 상징꽃인 ‘캄보쟈’꽃이 보인다. 향도 좋고 아주 예쁜 꽃이다. 그리고 칼라칼라의 동상 앞에서 사진도 찍었다.
해가 뜨거워 바틱모자를 26000루피아를 주고 사고 샌들도 45000루피아를 주고 사 신었다. 태양과 파도, 바람, 산호, 흰모래, 자그마한 조각배들이 그림처럼 아름다운 섬을 나와 11시 30분쯤 반잠수함을 타고 바다 속 신비를 감상한다. 해초들과 산호, 그리고 여러 빛깔의 물고기들이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약 10분 정도였지만 멀미가 나 힘들다.
다시 큰 배로 승선하여 점심을 먹기로 하는데 뽀빠인 멀미날 땐 많이 먹는 게 최고라고 하며 위로한다.
메뉴는 뷔페식인데 밥과 김치(와! 정말 맛있다.), 굴라쉬(동유럽의 전통요리인데 소고기요리다.), 닭튀김, 연어, 돼지고기바베큐와 편육, 햄, 고추장, 꼬치구이, 토마토와 각종과일 등 푸짐하다. 난 역시 김치와 밥을 잔뜩 먹는다. 소고기, 돼지고기도 맛있다.
식사를 한참 하는데 노래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자리마다 3인조 밴드가 그 나라의 노래를 연주하며 부르는 게 아닌가! 우린 신이 나서 어서 우리 자리로 오길 기다린다. 드디어 우리 차례! 우린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Sultans Of Swing'을 부탁했다.
예전에 선셋크루즈에서 신청해서 들었던 곡으로 아주 좋아하는 곡이기 때문이다.
밴드 사람들은 그 노래는 연주가 안 되는지 ‘Work Of Life'를 들려준다. 이 곡도 좋아하는 곡이라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곡은 다 좋아한다.) 신이 나서 손뼉을 치며 흥을 돋우었다. 뽀빠이가 3불과 5000루피아를 기타 속에 넣어주니 노래를 더 들려준단다. 우리가 비틀즈의 노래를 신청하니 'Let It Be'를 불러준다. 너무나 행복한 점심이라 멀미가 다 가신다.
우리 자리를 떠나 다른 한국인 자리로 가 부른 우리 가요인 ‘어머나’와 ‘사랑의 미로’까지 덤으로 들었으니 말이다.(현지가수들의 발음이 제법이다.)
점심을 끝내고 밖으로 스노클링을 하러 나가자니 외국인으로 보이는 사람 둘이 촬영을 하고 있다. 방송국에서 나왔나 보다.
지금이 오후 1시 30분.
뽀빠인 선크림을 바르고 스노클링을 하러 배타고 바다로 나가고 난 남는다.
탈의실과 화장실, 거울 달린 개수대 그리고 선상카페가 있는 이 곳. 강렬한 바다와 태양 아래서 아무런 근심, 걱정 없는 평화를 누린다.
나 혼자 심심하기도 하고 머리도 아파와 수건으로 몸을 휘어 감고 긴 의자에 아주 누워버렸다.
뽀빠이가 돌아와 깨우니 오후 2시 20분이다.
뽀빠인 공주마누라 땜에 혼자 놀았다고 투덜댄다. (미안해요, 뽀빠이!)
다시 창가 쪽 배 안에 들어가 앉아 쿠키와 오렌지주스를 마시며 출항을 기다리는데 드디어 2시 50분에 배가 움직인다. 난 또 멀미가 나 뽀빠이의 무릎을 베고 잠이 들었다. (정말 자상한 뽀빠이...)
항구에 도착한 시간이 3시 35분이다. 우린 3불을 주고 사진을 샀다.
차를 타고 가는 곳은 한 쇼핑센터. 30분 걸려 도착하니 상냥한 한국인 여인이 상품을 설명한다. 야자유와 비누, 꿀, 노니주스, 아로마향, 발리커피 등이다. 우린 커피를 25불 주고 사고 말았다. 한국분이 하도 상냥해서 말이다.
발리에서 5년 째 살고 있다는 그녀에게 살기가 좋으시냐고 물어봤더니 심심해서 한국으로 얼른 돌아가고 싶다고 한다. 노래방도 없고 재미가 없다고 하면서...
하긴, 한국은 밤문화가 너무 발달해서 탈인 곳이지. 나였으면 어떤 대답을 했을까? 잘 모르겠다. 발리에서 오래 살아보질 않아서. 하지만 휴양하기엔 정말 손색이 없는 곳이 발리이긴 하다. 우리나란 경쟁이 너무나 치열하고 복잡한 곳임엔 틀림없으니까...
우린 다시 차를 타고 꾸타시내에 있는 한 수퍼에 들러 한국컵라면 2개와 작은 청사과 4알, 캔콜라 3개(가이드와 기사 주려고)를 샀다.(총 31500루피아가 나왔다.)
가다 보니 파란색 깃발이 펄럭인다. 이것은 현대통령인 밤방 유도요노대통령을 지지하는 정당 깃발이란다.
우리 가고 있는 곳은 짐바란. 시간은 4시 50분이다. 이렇게 이른 저녁을 먹게 된 것은 꾸타시내의 ‘Hard Rock Cafe'를 가기 위해서이다.
피터 프램튼의 ‘Show Me The Way'를 들으며 '바람신’ 동상과 ‘불의 신’ 동상을 지나 저녁 5시 5분에 가장 아름답다는 짐바란해변에 도착했다.
우리가 먹게 될 식당은 ‘Surya Cafe' 인데 먼저 과일주스와 땅콩이 나온다.
씨푸드 내용은 바닷가재, 게, 새우 양념구이, 오징어꼬치구이, 생선구이, 깐꿍(나물무침), 밥, 조개찜 등 환상의 식단이다.
맛도 입에서 살살 녹아 하나도 남김없이 해치울 수밖에 없었다.
약간 짜서 생수 두 잔을 시켰더니 10000루피아 밖에 아니란다.
(예전에 왔을 땐 거의 못 먹고 다 남겼기 때문에 기대를 별로 하지 않았는데...)
식사를 끝내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는 해변에서 석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정말 아름다운 저녁이다.
바다 위 절벽 가까이에 보이는 빌라가 ‘포시즌’이라고 아스타와가 일러준다.
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자주 애용한다는 그 빌라가 저거구나...
그래도 우린 드림랜드가 너무 좋다.
저녁 6시 50분에 꾸타로 향했다.
시내가 좁아서 차가 많이 막힌다. 가이드와 기사를 보내고 우리만 남아 거리를 활보하니 진정한 여행자, 방랑자가 된 듯하다.
하늘엔 휘영청 보름달이 떠 있고 시원한 바람과 파도소리(바다엔 아베크족들이 진을 치고 있다.)가 정말 낭만적이다.
우린 예전에 갔던 하드락카페를 금방 찾았다. 들어가려다가 우린 생각을 바꿔 길거리카페에 가기로 한다. 밤거리에서 사진도 찍고 환전도 하면서 옷가게도 구경하다보니 화장실이 급하다. 마침 마타하리백화점이 보이기에 들어가 볼 일을 봤다. 우리나라 백화점 같으면 화려하고 깨끗한 화장실일텐데 여긴 정말 비좁고 두 칸밖에 없어 실망이다. 그래도 유럽의 여러 나라처럼 유료가 아닌 게 얼마나 다행인가!
백화점에서 나와 드디어 길거리카페에 들어간 우린 아주 친절한 어린 남자종업원과 애를 쓰며 영어로 주문을 했다. 빈탕맥주 4병과 바나나밀크쉐이크, 그리고 안주로 씨푸드(800g짜리 베이비워크라는 생선)를 시켰는데 생각했던 술집이 아닌 음식점이라 마른안주나 과일안주 같은 것은 전혀 없어 아쉽다. 씨푸드 가격은 9만루피아로 비싼 편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짐바란에서 잔뜩 먹고 온 게 씨푸드였기에 결국 고스란히 남기고 만 것이다. (가격은 다 합쳐서 12달러와 1만루피아를 내주어 계산을 끝냈다.) 카페는 비교적 아주 넓어 음악DJ와 BAR가 있고 무대의 밴드들도 있는데 외국인들이 많이 식사를 하고 있다.
드디어 밤 8시가 지나자 5인조 밴드의 연주가 시작된다.
화려한 오프닝 뮤직에 이어, 밥 딜런의 ‘Knock In On Heavens Door' 와 에릭 크랩튼의 ‘Wonderful Tonight'이 계속 이어진다.
리드기타와 베이스기타, 리듬기타와 키보드연주자 그리고 보컬리스트의 연주는 수준급이었다. 우린 여기서도 신청곡을 부탁했다. 물론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Sultans Of Swing'과 엘튼 존의 ‘Crocodile Rock'으로 신나는 음악이다.
보컬은 전통의상에 수염이 인상적인 혼혈로 보이는 사람인데 선상 밴드가 했던 것처럼 고개를 갸우뚱거리더니 곧바로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Work Of Life'와 ‘So Far Away'를 들려준다. 엘튼 존 노래도 안 되는지 CCR의 ‘Proud Of Marry'를 부른다. 뽀빠인 신이 나서 무대 앞으로 가서 독무를 추고 난리가 났다. 그리곤 보컬과 악수를 나누며 귓속말을 나눈다. 그러더니 보컬이 ‘코리아 원더풀’이라고 하며 엄지손가락을 내민다. 역시 음악의 힘은 대단하다!
밤 10시가 지나니 피곤하기도 하여 우린 자리를 떴다. 물론 밴드들에게 5달러를 주고 인사까지 나눈 후에 말이다.
이제 택시를 타야 하는데 아스타와가 타지 말라고 한 흰 택시를 그냥 탄 게 화근이었다. (아스타와는 파란 택시를 타라고 했다. 4불 정도 주면 된다고 하며.) 불빛에 택시가 은회색으로 보였고 기사에게 드림랜드풀빌라를 아냐, 얼마냐고 물었는데 안다, 원헌드레드루피아라고 분명히 말을 하여 너무 싸다고 생각해서 타긴 했는데 택시기사가 어디론가 전화를 하여 드림랜드의 위치를 묻는 것 같아 괜시리 불안하기만 한 게 아닌가!
아닌 게 아니라 드림랜드는 아직 개발이 덜 된 시골에 있어 모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어쨌건 뽀빠인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를 한다.
마냥 가다보니 기사가 이상한 외진 곳으로 간다. 난 이 곳이 아니라고 외쳐 돌리라고 단호히 말했다. 어찌 저찌 드림랜드에 도착하여 뽀빠이가 4만루피아를 건넸는데 기사가 6만루피아를 더 달라고 난리다. 아니! 1만루피아면 되는 줄 알았지만 더 준 건데 기사가 그러니 화가 났다. 종일 씻지 못하고 땀에 절어 피곤한데 기사까지 그러니 정말 짜증이 났다. 호텔 직원들도 거들어주기는커녕 말귀조차 알아듣지 못하여 난 결국 프론트에 부탁하여 한국인매니저를 불러달라고 했다. 조금 있으려니 나이가 지긋하신 남자분이 오셔서 도와준다고 하여 이야기를 했는데 원헌드레드루피아는 10불이라는 것이다! 아니! 어떻게 0자를 3개나 빼뜨리고 이야길 한단 말인가!
터무니없이 황당했지만 해결을 해야 하니 어쩌랴! 뽀빠이와 난 돈이 문제가 아니라 택시기사의 태도가 너무 화가 나서 그렇다고 매니저에게 양해를 구하고 기사에게 10불을 주어 보냈다.
숙소로 돌아와서도 화가 잘 가시지 않는다. 말귀를 못 알아들은 자신과 파란 택시를 타지 않은 자신에게 더 화가 나는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발리를 찾을 거란 맘도 가시려고 한다.
우린 자칫 부부싸움을 할 뻔 했지만 이 평화로운 섬을 싸움으로 오염시키면 안 된다는 데에 합의한다. 발리도 사람 사는 곳이니 좋은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걸 이해해야지. 그리곤 뽀빠이가 끓여준 한국커피믹스를 아~주 달고 맛있게 마시며 하루를 마감한다.
<제 4일 - 드림랜드비치와 선셋크루즈 >
뻐꾸기 울음과 새소리, 싱그런 바람에 풍겨오는 나무 냄새, 그리고 커피 한 잔에 온 몸을 맡기며 4일 째의 아침을 맞는다.
8시에 모닝콜을 부탁했지만 습관이 되어 일찍 눈을 뜬 것이다.
오늘은 한식으로 아침을 먹기로 했다. 밥과 김, 배추소고기된장국, 김치, 오이무침, 달걀말이, 새우완자구이, 야채샐러드, 홍차, 커피, 과일(메론, 파파야, 망고, 수박, 요구르트) 등 푸짐하고 맛있는 아침을 먹고 여유 있게 시간을 보낸 후 10시에 호텔 내 셔틀버스로 자체 해변으로 출발했다. 물론 수영복을 입은 채로...
비치 가는 길은 아직 포장이 제대로 되질 않아서 울퉁불퉁했지만 그래도 오지 탐방을 하는 기분이어서 색다른 맛이다.
10분 넘게 걸려 도착한 해변은 와! 정말 환상이다.
생크림 같은 하얀 파도와 흰 모래사장, 신비한 절벽과 잘 정돈된 파라솔과 의자, 카페, 모래 위를 노니는 흰 개와 얼룩 개, 그리고 북적이지 않고 한적한 분위기하며...
외국인 몇 몇이 바다 속으로 뛰어들어 놀고 있는데 우린 섣불리 몸을 담그질 못한다.
대신에 낭만적인 포즈로 사진을 많이 찍으며 수건이 깔린 의자에 누워 망고와 사과를 깎아 먹는다. 카페 직원으로 보이는 발리남에게 물을 시켰더니 얼음 띄운 물 두 잔을 준다. 돈을 내려 했더니 무료란다. 더 여유 있게 놀고 싶은데 셔틀버스를 운전하는 호텔직원과 11시에 만나기로 한 탓에 시간적인 여유가 없어 아쉽다.
숙소로 돌아오니 11시 15분이다. 우린 풀로 뛰어들어 놀고 책도 읽고 하면서 여유를 즐긴다.
오늘 점심은 밖에 나가서 먹어야 하는데 포기했다. 저녁에 선셋크루즈를 하려면 점심 먹고 남는 시간이 애매하기 때문에 아스타와에게 천천히 우릴 데리러 오라고 편의를 봐준 것이다.
우린 갖고 있는 컵라면과 단팥죽, 그리고 각종 과일로 점심을 때우기로 했다.
육개장라면과 신라면을 하나씩 먹으니 뽀빠인 성에 안찬다고 발리에서 산 김치찌개라면을 또 끓인다. 그런데 사고가 터졌다! 맛이 이상하다면서 내게 맛보라고 해 먹어보니 술 냄새가 나는 것이 아닌가! 뽀빠이는 한국에서 가져온 소주를 담은 병을 물병으로 착각하여 물 대신에 술을 끓인 것이다. 포트가 끓을 때 물이 쏟아져 나와 이상했는데 아니다 다를까, 술로 라면을 끓이니 그 맛이 어떠하겠는가!!! 결국 아까웠지만 죄다 버리고 단팥죽과 각종 마른안주, 과일로 배를 채운 우리.
(나중에야 알았지만 호텔 내 파스타와 피자를 시켜 먹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 각 10불 내지 12불 정도면 근사한 점심을 먹을 수 있었을텐데...)
아! 이제 나이를 먹으니 매일매일 해프닝이 생기는구나. 정말 슬프다...
우린 슬픔을 낮잠으로 잊고 나서 오후 4시 40분에 아스타와를 만났다.
선셋크루즈도 ‘Bounty Cruse'이다. 항구로 가면서 보이는 풍경들이 이제는 낯이 익다. 소이야기가 나와 소 한 마리 가격을 물어보니 250불이라고 하고, 돼지는 70불, 시장에서 파는 바비큐 돼지고기는 1불, 닭고기도 1불이라고 아스타와가 말해준다.
그리고 개들이 많이 보이지만 발리인들은 개보다 고양이를 선호한다는 것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음악도 듣다보니 오후 5시 20분에 선착장에 도착했다.
무희로 보이는 아가씨가 순백색의 캄보쟈꽃목걸이를 손님들에게 다 걸어준다.
선승하면서 또 사진을 찍었다. 어제보다 더 어여쁜 발리여인들이라 포즈를 취했다. 우린 타자마자 3층 선상밴드에게로 간다.
어제 봤던 연주가는 남자 둘 뿐이고 대신에 여자 한 명이 낀 멤버다.
그들은 ‘스키야키’, ‘사랑해’, ‘아리랑’, ‘해변의 여인’, ‘순이 생각’, ‘사랑은 아무나 하나’, ‘영영’, ‘Under The Sea’ 같은 노래들을 차례로 부른다. 아무래도 한국인이 제일 많아서 그런 것 같다. 인도네시아인들과 대만인, 호주인, 헝가리인 등 많은 사람들이 승선을 해서 즐기고 있다.
배는 저녁 6시 정각에 출항을 시작한다.
아스타와는 무대 앞 제일 좋은 자리에 우리를 앉게 한다. 역시 베테랑 가이드답다.
곧바로 우린 뷔페식 저녁을 먹는다. 밥, 소고기, 닭고기, 돼지고기, 야채샐러드(토마토, 양파, 감자, 피망, 오이 등을 섞은), 연어, 새우, 파인애플꼬치구이, 수박화채, 야채스프(파슬리, 당근, 옥수수, 콩볶음이 들어간), 과일(수박, 파인애플, 메론) 등 역시 푸짐하다. 뽀빠인 맥주를 계속해서 시켜 마신다.
저녁 7시 20분이 되자 선상쇼가 시작된다.
남편이 연주가이고 부인이 가수인데 둘 다 중국계 혼혈아라고 한다.
여가수는 각 나라 말로 노래를 하는데 가히 수준급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노래로 ‘사랑해’를 부르며 한국인을 나오라고 해도 아무도 나가질 않아 내가 할 수없이 그녀의 손에 이끌려 나가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 1절을 부르려니 뽀빠이까지 나오게 해서 함께 노래를 부르며 우리는 금슬 좋은 부부의 모습을 보여주게 되었다.(사진 찍어준 아스타와, 고마워요.)
조금 있으려니 디스코타임이다.
신나는 노래를 부르며 무대로 다들 모이게 하는 여가수의 카리스마가 대단하다.
국적을 불문하고 모두 함께 한마음으로 춤을 추는 시간이 달빛 어린 바다 위를 흥겹게 흐르고 있다.
춤을 잘 못 추는 우린 다시 3층 밴드 앞으로 가 음악을 감상한다.
신혼여행 온 호주인을 위한 호주 노래 5인조 밴드 Men At Work의 ‘Down Under’, 헝가리 여인들을 위한 헝가리 민요, 대만 가요와 한국 가요를 계속 들으며 바다 위에서의 낭만을 만끽한다.
아쉽게 회항하여 항구에 도착하니 밤 9시가 다 되었다.
우린 26000루피아를 주고 또 한 장의 사진을 사서 추억을 보탠다.
드림랜드에 돌아와 선셋바(음료 무료 티켓을 쓰질 못해)에 가서 맥주도 마시고 분위기를 즐기려 했지만 노는 것도 피곤한지 그냥 방으로 돌아와 쓰러졌는데 이렇게하여 드림랜드에서의 마지막 밤은 아쉽게 끝나버렸다.